지난 두 달 간의 테마 코너를 통해 IXDesign은 색다르고 독특한 타이포그래피가 담긴 포스터 디자인을 선보인 바 있다. 포스터는 영화, 책, 상품, 연극 등을 홍보하기 위해 쓰이며, 강렬한 디자인과 문구로 사람의 이목을 사로잡곤 한다. 그렇다면 최초의 포스터는 무엇이었고, 누구에 의해 탄생된 것일까. 인쇄술의 발달은 1400년경 목판인쇄로 제작된 ‘첫 포스터’를 탄생시킨다. 오늘날과 같은 포스터의 흐름을 정립한 건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이었다. ‘현대포스터의 아버지’로 불리는 툴루즈 로트렉은 몽마르트의 상징인 ‘물랭 루즈’를 무대로 파리의 삶을 날카롭게 주목했다.
 

 

 

 

 

이런 툴루즈 로트렉의 전시가 5월 3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 바로 《툴루즈 로트렉展 – 물랭 루즈의 작은 거인》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로트렉이 남긴 포스터, 석판화, 드로잉, 스케치, 일러스트와 수채화 등의 작품을 빠짐 없이 만나볼 수 있다. 만나볼 수 있는 것은 비단 그가 남긴 작품뿐만이 아니다. 한가람미술관에 준비된 미디어아트, 영상, 사진을 통해 몽마르트의 작은 거인으로 불렸던 툴루즈 로트렉의 발자취를 느껴볼 수 있다. 37년의 길지 않은 생애 동 안 5,000여점에 가까운 작품을 남기고 떠난 툴루즈 로트렉을 한걸음 한걸음 뒤쫓아 가보자.
 

 

 

 

 

연필로 자유를 사다
 

 

연필은 유화 물감, 프레스코, 아크릴 물감, 붓에 비해 간소한 도구처럼 보인다. 그러나 로트렉은 늘 연필을 가지고 다니며 떠오르는 영감을 빠짐 없이 기록하려 애썼다. 연필과 펜이 만드는 스케치를 본격적인 그림을 그리기 전의 준비 단계이자 원칙으로 여겼다. 이 섹션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것은 현대적이면서도 절묘한 드로잉이다. 매우 빠른 속도로 펜을 움직여 대상을 묘사했음에도 날카로운 선들이 모여 명확한 대상의 특징을 드러냈다. 툴루즈 로트렉이 17살 때 아버지를 그려 묘사했던 <알퐁스 드 툴루즈 로트렉(Alphonse de Toulouse-Lautrec) 백작의 초상>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상류 사회를 비웃다

 

 

몽마르트의 화가로 불렸던 툴루즈 로트렉은 파리의 밤 문화를 만들었던 여인들을 즐겨 그렸다. 비극적으로, 또는 희극적으로. 그들을 비웃기 위함은 아니었다. 오히려 위선과 가식으로 뭉친 상류사회를 조롱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로트렉의 독특한 감각으로 그려진 모델들은 그의 포스터를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로트렉은 이 시기에 만난 카바레 스타인 제인 아브릴(Jane Avril)과 친분을 쌓았고, 이후 제인은 그가 죽을 때까지 그의 곁을 지켰다. 그의 유명한 작품인 <디방 자포네(Divan Japonais)>에서 공연을 보고 있는 매력적인 여성으로 묘사된 것이 바로 제인 아브릴이었다.

 

 

 

 

몽마르트의 작은 거인

 

 

3번째 섹션은 대중적인 카바레 쇼에서부터 오페라하우스에서 만날 수 있는 비극이나 클래식 공연까지, 그와 관련된 다양한 엔터테인먼트를 담았다. 일본의 목판화가였던 오노레 도미에(Honore Daumier)에게 영감을 받은 빛과 그림자의 역동적인 대조 및 움직임, 과감한 생략을 읽어낼 수 있다.
 

 

 

 

추한 것이 아름답다 

 

 

세기는 바뀌고 파리에는 카바레의 화려한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엔터테이너들의 화려한 공연이 열린다. 로트렉은 그들에게 강요된 관능과 유혹, 그 아래 감춰진 열정과 외로움,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욕망을 목격하고 작품 안에 담아냈다. 19세기 후반 판화의 최대 걸작으로 꼽히는 <엘르(Elles)> 연작은 이런 환경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이상보다는 진실을 그리다
 

 

 

19세기 말, 프랑스에는 각종 잡지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야말로 황금기. 로트렉에게는 원고를 청탁하는 편지가 쇄도했다. 잡지를 위해 제작했던 일러스트, 만화, 디자인은 로트렉이 남긴 유산들 중 하나이다. 이 시기 파리에서 출판되던 풍파 잡지인 <르 리르(Le Rire)>는 스타들의 밤 문화와 유명인사들에 대한 가십이 넘쳐났다. 로트렉은 <르 리르>에 풍자 그림을 자주 게재하곤 했다. 이 섹션에서는 로트렉이 기고했던 그림들과 잡지의 실물이 소개된다. 뿐만 아니라 로트렉이 일생 동안 가장 열정을 쏟은 석판화의 세계를 만날 수 있는데, 로트렉이 직접 제작한 석판화 판석과 스케치 등을 통해 작품이 탄생하는 과정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다.
 

 

  

 

나는 단지 기록할 뿐이다

 

 

로트렉의 친구이자 저널리스트였던 타데 나탕송(Thadée Natanson)은 그에 대해 이렇게 회상하곤 했다. “앙리는 남성보다는 동물을, 동물보다는 여성을 좋아했다. 그는 미칠 정도로 말을 좋아했지만 말을 타지는 못했다.” 로트렉은 말을 좋아했다. 그가 어렸을 적 말과 함께 야외 활동을 하던 시절에 그린 청소년기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로트렉은 훗날 알코올 중독과 과대망상증으로 인해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기억에 의존해 자신이 좋아했던 서커스 장면과 말을 드로잉하기 시작했다.
 

 

 

 

 

현대 그래픽 아트의 선구자 툴루즈 로트렉 

 

 

19세기, 예술가의 역할이 이전과 상상할 수 없을만큼 달라졌던 시기였다. 예술가들은 귀족과 부유층을 위해 의뢰 받은 작품을 만들었지만, 그 후 스튜디오가 생겼고, 자신만의 시각과 관점이 담긴 작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주제, 혁신적 형태, 이전에 없던 스타일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한 경제구조 변화와 맞아 떨어졌다. 포스터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대각선 구도, 과감한 자르기, 배경 생략, 선명하고 강렬한 색채, 굵고 진한 선, 사선 문양 등, 당시 화가들의 고전적인 회화 기법과는 한 차원 다른 시각을 드러낸 그의 작품이었다. 그런 툴루즈 로트렉의 포스터는 최초의 현대적인 포스터로도 평가 받는다. 당시 수집가들은 그의 포스터를 높게 평가했으며, 벽에 붙은 포스터를 떼어가지려 애썼다. 예술 비평가였던 펠릭스 페네옹(Félix Fénéon)은 그의 포스터를 두고 이렇게 얘기하기도 했다. “감초를 사용해 민망한 쾌락을 느끼게 만드는 엉터리 그림들보다, 훨씬 활력 있는 툴루즈 로트렉의 포스터를 손에 넣으라.”
 

 

  

 

후기인상주의 화가이자 현대 그래픽 아트의 선구자로 꼽히는 툴루즈 로트렉의 전시를 만나보았다. 로트렉은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을 뿐 아니라, 비평가들의 인정까지 받았던, 상업미술과 순수미술의 벽을 허문 작가였다. 국내 첫 단독전인 《툴루즈 로트렉展 – 물랭 루즈의 작은 거인》은 올해 5월 3일까지 한가람미술관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프랑스 몽마르트 언덕을 느끼며 19세기 후반 서양미술 사조의 한 흐름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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